광고대행사에서 보낸 5년 되돌아보기

2021년 // 마케터에 대한 막연한 로망과 현실

2021년 2월, 코로나가 지독하게 유행하던 시기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에 나섰다. 마케터의 직무도 모른 채 마케팅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곳저곳 서류를 넣어 보았다. 당시에 그로스 해커, 그로스 마케팅, 퍼포먼스 마케팅 같은 직무가 특히 유행처럼 많이 보였다. 경제학을 전공했기에 데이터를 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걸 바탕으로 제안하고, 실제로 성과가 개선됐다는 것을 숫자로 증명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도 꽤나 비슷했다. 데이터를 다루는 것이 유망해 보이던 시기에 나는 디지털 광고대행사에 입사했다.

막상 입사해서 처음 맡은 일은 데일리 리포트에 들어갈 RAW 데이터를 취합하는 업무였다. 매체마다 하나씩 접속해서 보고서를 내려받고, 양식을 맞추기 위해 가공하고, 잘못된 곳은 없는지 점검했다. 하나하나 눈으로 보면서 업무를 하다 보면 오전이 다 가곤 했다.

2022년 // 데이터 분석하기 전에 기초부터 열심히

데이터를 취합하고 운영 히스토리를 파악하는 업무는 3개월이면 익숙해졌다. 단순 반복 업무만 매일 하다 보면 이걸 꼭 사람이 해야 하나 싶었다. 자동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을까.

업무 중 하나로 매시간 정각마다 네이버 검색광고 계정의 예산 소진 현황을 취합하는 업무가 있었다. 계정마다 하나씩 들어가서 비용을 확인하고 복사하고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붙여 넣고 메신저에 보고하는 일이 꽤나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무작정 검색만 해 보다가 API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고, Python을 다짜고짜 독학하기 시작했다.1

코드는 잘 몰랐다. 완벽한 코드보다 얼레벌레 돌아가는 코드가 필요했다. 필요한 부분을 찾아가며 얼기설기 엮었다. 그래도 계정별 비용을 취합해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업데이트하고, Slack으로 알림을 보내는 것까진 만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생각하지 말고 엔비디아 주식을 사야 했는데
우스갯소리로 생각하지 말고 엔비디아 주식을 사야 했는데

2022년 말에 처음 ChatGPT를 접했다. 처음에는 똑똑한 심심이 정도로 생각했다. ‘세종대왕 맥북프로 던짐 사건’ 같은 환각 때문에 이상한 답변을 하는 이슈도 우스갯소리로 돌곤 했다. 내가 하던 업무에 어떻게 접목할지는 처음부터 떠올리지 못했다.

2023년~2024년 // 아이디어는 많은데 완성을 못 하겠어요

GPT-4 모델이 출시되고 본격적으로 AI가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던 시기, ChatGPT가 코딩도 잘한다고 하길래 내가 만든 Python 코드를 넣고 리팩터링을 시켜 봤다.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반복해서 길게 써 놓은 스파게티 코드를 보기 좋게 함수로 묶어서 정리하고 오류도 보완해 줘서 유지 보수도 쉬워졌다.2

직접 만든 코드를 고치는 데 써 보니 꽤나 쓸모가 느껴졌다. 2023년 말쯤 자연어 프롬프트로 UI를 만들어 주는 v0.dev로 대시보드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Python만 조금 알았지 웹은 거의 몰랐다. 화면을 만드는 것 말고도 데이터는 어떻게 끌어오는지, 호스팅은 어떻게 하는지, 애초에 그런 개념이 뭔지 하나도 몰랐다. 거기서 막혔다.

업무 활용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Astro 프레임워크로 블로그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UI와 컴포넌트, Vercel 같은 배포 플랫폼과 다양한 개념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Google Analytics 4, Google Tag Manager 같은 퍼포먼스 마케팅 업무에서 주로 사용하는 서비스들도 제로 베이스부터 설치하고 세팅해 보며 업무적으로도 좀 도움이 되긴 했다.3

2025년 // 코딩 에이전트로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Python으로 만든 여러 가지 기능을 팀원들에게도 배포하고 싶었다. 하지만 환경 세팅부터 코드 배포까지 다른 사람도 내 PC에서 돌아가는 것처럼 동일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방법을 바꿔서 업무에서는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주로 사용하니 그쪽으로 다시 생각해 봤다.

2025년에는 Google Apps Script를 활용해서 스프레드시트를 자동화했다. 당시 담당하던 홈쇼핑 클라이언트는 사내 솔루션을 많이 활용했는데, 솔루션에 올릴 벌크 업로드 양식을 작성하는 데 공수가 꽤나 들었다. 방송 시간과 운영 전략에 맞춰서 정해진 양식에 하나씩 일일이 입력해야 했다. 이걸 스프레드시트에서 운영 전략과 시간표를 넣으면 업로드 템플릿이 나오도록 만들었다.4

2025년 5월에는 코딩 에이전트 Codex가 출시되면서 더 다양한 것을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Next.js로 업무 관련 유틸리티 웹페이지를 만들어 사내에 배포했는데, 처음 들어간 코드는 CSV 파일을 정리하는 도구였다.

이건 원래 내 업무가 아니긴 했다. 당시 다른 클라이언트를 담당하는 팀원이 Amplitude에서 다운로드한 CSV 파일을 열면 한글이 깨지거나 위에 불필요한 안내 문구가 있어 그때마다 엑셀로 하나씩 정리하는 모습을 봤다. 그 과정이 꽤나 귀찮아 보여서 해결해 주려고 만들었다. CSV를 넣으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위쪽의 불필요한 줄을 정리하고, 한글이 깨지지 않도록 인코딩을 맞춰 다시 내려받는 도구였다. 이후에 다른 사람이 반복해서 하는 일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덜어 주려고 만든 웹페이지에 기능을 하나씩 붙였다.

2026년 // 그 업무를 꼭 사람이 해야 할까

업무 유틸리티 웹페이지를 만들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업무하면서 단순 반복하는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런 업무가 있다면 실제로 어떤 프로세스로 하는지, 어떤 규칙이 있는지, 어디에서 실수가 주로 발생하는지 등을 파악하고 Codex와 함께 기능을 만들어서 웹페이지에 기능을 추가했다.

이 과정에서 코딩 에이전트에서 사용하는 Skills, MCP, CLI 같은 개념도 더 알게 됐다. Next.js, Tailwind CSS, shadcn/ui도 직접 써 보면서 배웠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ChatGPT에게 물어보고 관련 라이브러리나 서비스를 알게 되면서 하나씩 접하게 됐다. 그리고 내가 만든 기능을 상대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UI/UX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내 반복 업무를 줄이고 싶어서 시도했던 개발이 이제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도 보고, 그 과정을 확인한 다음 도구로 만들어보는 과정으로 넓어지고 있다.

AI를 데이터 분석에 써 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미디어믹스를 짜거나 성과를 예측하는 데 그라디언트 모델을 활용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모델이 어떤 개념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AI에 너무 의존해서 일단 시키기부터 했다. 하다 보니 어떤 데이터를 넣어야 하는지부터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출, 클릭, 비용, 전환 같은 광고 운영 지표만 넣어서는 내가 기대한 분석이 되기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보려던 문제에서는 이 지표들 사이의 비례 관계를 다시 계산하는 데 그치는 것 같았다. 광고 밖의 변수도 함께 살펴보고, 그중 무엇이 성과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무엇을 넣을지, 나온 결과를 어떻게 읽을지 내가 판단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이해 없이 나는 AI가 만들어 주는 것에 기대고 있었다.

마치며 - 단순 반복은 자동화, 사람은 기획하고 분석하자

자동화를 만들고 도구를 추가하면서 나와 팀원들의 반복 업무를 줄이는 데는 AI를 썼다. 다만 광고 성과를 분석하고 개선하는 데까지 제대로 연결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입사할 때 해 보고 싶었던 일인데, 그 부분은 여전히 아쉽다.

웹을 만들면서 프론트엔드와 백엔드의 기초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듯이 데이터 분석도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AI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이 많아져도, 내가 무엇을 시키는지와 결과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겠더라.

Footnotes

  1. 당시에 Python으로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강의와 콘텐츠가 범람하던 시기였기에 나도 유행 따라서 Python으로 공부했다. ↩

  2. 이때부터 슬슬 코드를 직접 읽지 않고 AI한테 시키기 시작했다. ↩

  3. 뭐 하나 제대로 만든 건 없었지만. ↩

  4. 지금은 다른 클라이언트를 담당하고 있지만 구글 스프레드시트는 유산처럼 남아서 누군가가 열심히 돌리고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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