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대파가 딱 한 줄기 부족했던 경험, 있으신가요? 예전 같았으면 아쉬운 대로 다른 메뉴를 고르거나 귀찮음을 무릅쓰고 마트에 다녀왔을 테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스마트폰 앱을 열어 주문 버튼을 누르면 채 30분도 안 되어 현관문 앞에 필요한 재료가 도착하는 시대. 바로 퀵커머스Quick Commerce가 만들어낸 새로운 일상이죠.
단순히 ‘빠른 배송’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는 퀵커머스가 가져온 변화의 크기를 전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단순히 배달 시간을 단축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우리의 소비 습관과 라이프스타일, 나아가 도시의 물류 지형까지 바꾸고 있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기 때문입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퀵커머스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어떤 전략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거대한 흐름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갈까요?
🏙️ 새로운 도시인의 탄생과 퀵커머스의 부상
퀵커머스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깊숙이 맞닿아 있는데요. 가장 주목할 부분은 1인 가구의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대한민국 1인 가구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세대를 돌파했으며, 이는 전체 가구의 약 42%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1인 가구는 더 이상 특별한 가구 형태가 아닌,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 된 것이죠.
대용량 묶음 상품보다는 당장 필요한 만큼만 소량으로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며, 장을 보는 데 시간을 들이기보다 그 시간을 자신을 위해 활용하려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퀵커머스는 바로 1인 가구의 니즈를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연도별 1인가구수 및 비율
2017년 ~ 2024년 기준 (단위: 만가구 / %)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비대면 문화는 퀵커머스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듯 생필품을 주문하고, 배달비를 지불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진 것이죠. 한번 ‘즉시성’과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경험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과거의 불편함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는 특정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락인 효과’로 이어지는데요. 오늘 B마트에서 주문한 고객이 내일도 B마트를 찾을 확률이 높은 것처럼, 퀵커머스는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고 충성도를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결국 퀵커머스는 ‘시간’이라는 가장 귀한 자원을 아껴주고, ‘필요한 순간’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2020년 약 3,5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퀵커머스 시장은 2025년 5조 원 규모까지 성장이 전망될 정도로, 퀵커머스는 현대 도시인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어요.
⚔️ 세 가지 전략,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현재 국내 퀵커머스 시장은 크게 세 가지 다른 전략을 가진 거인들의 격전지가 되었습니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그리고 네이버.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심 마지막 1km’를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1.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한다: 배달의민족 B마트의 ‘직진형 모델’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B마트는 퀵커머스 시장의 선두주자이자 가장 정석적인 모델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핵심은 ‘직매입’과 ‘다크스토어’입니다. 전국 주요 도시에 약 70여 개의 도심형 물류센터(PPC, Picking & Packing Center)를 두고 직접 상품을 사들여 재고를 관리하며,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포장하여 자체 배달망을 통해 평균 30분 내외로 배송합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과정을 직접 통제함으로써 서비스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품의 신선도부터 재고 관리, 포장, 배송 시간까지 모든 것을 표준화하여 고객에게 일관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죠. 특히 즉석밥 한 개, 사과 한 알처럼 1인 가구를 겨냥한 초소량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직매입 모델이기에 가능합니다. 최근 B마트는 상품군 확대와 객단가 상승에 힘입어 연간 EBITDA 기준 첫 흑자를 달성하며, 수익성 증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2. 생태계의 힘으로 승부한다: 쿠팡이츠의 ‘플랫폼형 모델’
쿠팡이츠는 초기 ‘이츠마트’라는 직영 모델을 시도했으나, 현재는 방향을 크게 선회했습니다. 직접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대신, 동네 슈퍼마켓, 정육점, 편의점 등 지역 상점들을 플랫폼에 입점시켜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중개 모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막대한 초기 투자와 고정비 부담이 큰 다크스토어 모델의 단점을 피하고, 자사의 핵심 역량인 ‘플랫폼’과 ‘와우 멤버십’의 힘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쿠팡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최근 월 7,890원으로 인상된 와우 멤버십입니다. 멤버십 회원에게 제공되는 ‘무료배달’ 혜택은 퀵커머스 이용의 가장 큰 허들인 배달비를 사실상 제거해버립니다. 소비자는 추가 비용 없이 동네 가게의 상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최근 GS25, GS더프레시까지 입점시키며 상품 구색을 강화한 쿠팡이츠는 물류라는 무거운 짐을 지역 상권에 나누는 대신,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고객 유치와 락인에 집중하며 비용 효율성과 빠른 확장성을 동시에 꾀하고 있습니다.
3. 연결을 통해 판을 키운다: 네이버의 ‘연합군 모델’
네이버는 앞선 두 기업과 또 다른 길을 걷습니다. 자체 물류망도, 직매입 상품도 없습니다. 대신 CU, GS25와 같은 편의점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이마트에브리데이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폭넓게 손을 잡았습니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내 ‘지금배달’ 서비스는 사용자가 웹 또는 앱에서 주변 상점의 상품을 검색하고 주문하면, 제휴를 맺은 유통사의 매장이 즉시 배송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네이버는 막대한 투자 없이도 전국에 촘촘하게 깔린 편의점과 슈퍼마켓을 순식간에 자신들의 배송 거점으로 활용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셈인데요. 이는 직접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 각 분야의 강자들을 연결하여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네이버의 전형적인 전략이 퀵커머스 시장에서도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속도의 역설, 과연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일까?
화려한 성장세 이면에는 모든 퀵커머스 기업이 마주한 거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수익성’이라는 이름의 역설이죠. 주문 후 1시간 내 배송이라는 매력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도심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며 다크스토어를 유지해야 하는 높은 고정비는 기본이고, 상품을 선별하고 포장하는 인력과 배송을 책임지는 라이더에게 지급되는 인건비 역시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에 고객을 유치하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할인 쿠폰과 프로모션 경쟁까지 더해지면 비용 구조는 더욱 악화됩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계란 한 판, 우유 하나를 배달해서는 이익을 남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B마트조차 오랜 기간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많은 후발 주자들이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 풀기 어려운 수익성 퍼즐을 어떻게 맞춰나가고 있을까요? 그 해답은 단순히 물건을 배송하는 것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다각적인 전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고객 한 명당 발생하는 매출, 즉 객단가를 높이는 것입니다. 마진율이 높은 자체 브랜드 (PB) 상품을 개발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신선식품이나 간편식 외에 화장품, 소형가전 등 상대적으로 고단가 상품군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또한 최소 주문 금액을 설정하거나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배달비를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고객이 더 많은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내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노력도 병행됩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주문량을 정교하게 예측하여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고, 다크스토어 내 상품 배치와 동선을 최적화하여 피킹과 포장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죠. 이는 장기적으로 로봇을 활용한 물류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어지며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바로 부가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쿠팡의 와우 멤버십처럼 구독료 기반의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거나, 플랫폼의 막대한 트래픽을 활용해 특정 상품을 더 잘 노출시켜주는 대가로 제조사로부터 광고비를 받는 모델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퀵커머스가 더 이상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니라, 고객의 구매 데이터가 집약된 강력한 광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속도 경쟁의 출혈을 감내하면서까지 고객을 확보하려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다층적인 수익 구조를 완성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식료품을 넘어, 모든 것을 즉시 배달하는 미래로
퀵커머스 시장의 최종 목적지는 단순히 식료품과 생필품 배달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구축한 도심 내 촘촘한 물류망과 빠른 배송 능력은 다른 어떤 산업과도 결합할 수 있는 무한한 확장성을 지니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CJ올리브영의 ‘오늘드림’ 서비스입니다. 전국 오프라인 매장과 도심형 물류센터를 활용해 화장품을 평균 30~50분 내에 배송하며 퀵커머스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최근에는 다이소 역시 일부 지역에서 ‘오늘배송’ 시범 서비스를 재개하며 생활용품 시장으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가까운 미래에는 약국과 연계한 상비약 배달, 서점의 신간 도서 배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급하게 필요한 문구용품이나 소형 전자기기를 주문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지겠죠. 또한 세탁물 수거 및 배달, 소규모 물품 퀵서비스, 지역 맛집의 레시피와 식재료를 함께 배송하는 밀키트 서비스 등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하이퍼로컬(Hyper-local) 종합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퀵커머스 전쟁의 본질은 ‘누가 더 빨리 배송하는가’를 넘어, ‘누가 도시인의 모든 즉각적인 필요를 해결해주는 필수 생활 인프라가 되는가’의 싸움입니다.
🛵 속도를 넘어 가치를 증명해야 할 시간
퀵커머스는 1인 가구 증가, 비대면 문화 확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네이버는 각각 직영, 플랫폼, 연합이라는 다른 해법을 들고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요. 이들의 경쟁은 소비자에게 더 빠른 편리함을 제공하며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장은 ‘얼마나 빠른가’라는 속도 경쟁을 넘어 ‘어떻게 지속 가능한가’라는 가치 증명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막대한 비용 구조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 그리고 식료품 배달을 넘어 도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서비스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이들 앞에 놓인 공통의 과제입니다.
앞으로 퀵커머스 시장의 승자는 단순히 물건을 가장 빨리 가져다주는 기업이 아닐 것입니다. 고객 데이터를 가장 잘 이해하고, 기술을 통해 운영을 가장 효율화하며, 다른 서비스와의 영리한 결합을 통해 우리 일상에 가장 깊숙이 스며드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