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ma: 피그마는 어떻게 팀의 운영체제으로 성장할 수 있었나

Jul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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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프로덕트, 서비스의 시작점에는 언제나 ‘디자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디자인은 소수의 전문가를 위한 폐쇄적인 성과 같았습니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버전을 맞추고, 수정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파일을 몇 번이고 다시 보내는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고충이었죠. 바로 이 지점에서 피그마는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디자인이 특별한 사람만 접속하는 성이 아니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광장이 된다면 어떨까?”

피그마의 등장은 흔한 디자인, 협업 툴의 출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품을 만드는 방식, 팀이 협업하는 문화 자체를 뒤바꾼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습니다. 어떻게 피그마는 스케치와 어도비가 양분하던 견고한 시장을 뚫고, 디자이너를 넘어 기획자, 개발자, 마케터까지 사로잡는 ‘팀의 운영체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요? 그 성공의 이면에는 기술적 선택을 넘어선 치밀한 전략과 인간 중심의 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 디자인 툴의 공식을 깨다, ‘설치’가 아닌 ‘접속’의 시대

딜런 필드와 에반 윌리스 © figma
딜런 필드와 에반 윌리스 © figma

피그마의 가장 큰 혁신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무엇을 가능하게 했느냐에 있습니다. 2012년, 브라운 대학교에서 만난 딜런 필드 Dylan Field 와 에반 월리스 Evan Wallace 가 창업을 구상할 당시, 그들의 비전은 명확했습니다. 구글 독스처럼 실시간 협업이 가능한 디자인 툴을 만드는 것이었죠. 이를 위해 그들은 ‘브라우저’를 기반으로 삼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거운 그래픽 연산을 브라우저에서 처리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실제로 공동 창업자이자 CTO인 에반 월리스는 WebGL 같은 기술을 활용해 브라우저 안에서 고성능 렌더링 엔진을 직접 구축해야 했습니다.

이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이유는 접근성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존의 디자인 툴은 특정 운영체제에 종속되거나, 고가의 라이선스를 개별적으로 구매해 PC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와 비디자이너 사이에 높은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디자인 파일을 확인하려면 디자이너에게 스크린샷을 요청하거나, 별도의 뷰어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죠.

피그마는 4년이 넘는 개발 기간 끝에 2016년, 이 모든 과정을 단 하나의 ‘링크’로 해결하는 공개 버전을 선보였습니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누구든, 어떤 디바이스로든 디자인에 접속하고 실시간으로 변경 사항을 확인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워드 파일을 이메일로 주고받던 시대에서 모두가 하나의 구글 독스 문서에 동시 접속해 편집하는 시대로 넘어온 것과 같은 혁신이었죠. ‘설치’라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접속’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한 이 선택은, 피그마가 이후에 펼쳐나갈 모든 협업 전략의 단단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 도구를 넘어 생태계로: 커뮤니티가 플랫폼을 키우는 법

피그마 커뮤니티 페이지 © figma
피그마 커뮤니티 페이지 © figma

초기 피그마는 뛰어난 실시간 협업 기능으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의 변곡점은 2019년 10월, ‘커뮤니티’ 플랫폼을 출시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이는 피그마가 단순히 잘 만든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진화하고 확장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선언이라 볼 수 있죠.

플러그인 시스템은 피그마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는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사용자들은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기능을 직접 만들어 추가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는 피그마의 기능을 무한히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개발자 커뮤니티를 피그마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유인이 되었습니다.

커뮤니티 플랫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전 세계 사용자들이 자신이 만든 디자인 시스템, UI 키트, 템플릿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리소스의 보고를 연 것입니다. 이제 막 디자인을 시작하는 주니어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기업의 디자인 시스템을 참고해 학습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잘 만들어진 템플릿을 활용해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전략은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더 많은 사용자 → 더 다양한 플러그인과 커뮤니티 자료 → 더 강력해진 피그마의 가치 → 더 많은 신규 사용자 유입

이러한 생태계 전략을 통해 피그마는 사용자들을 단순한 ‘소비자’에서 플랫폼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자’이자 ‘기여자’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그마가 경쟁 툴과 격차를 벌리며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핵심 동력입니다.

👨‍💻👩‍🎨 모두를 위한 디자인: ‘팀의 운영체제’가 되기까지

피그마 Dev Mode © figma
피그마 Dev Mode © figma

피그마의 철학은 처음부터 디자인은 디자이너만의 일이 아니다 라는 명제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철학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피그마는 집요하게 사용자 범위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디자이너가 피그마를 쓰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협업해야 하는 기획자, 개발자, 마케터도 피그마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죠.

이 전략의 정점은 ‘개발자’를 향한 적극적인 구애에서 드러납니다. 전통적으로 디자인과 개발의 경계는 소통의 병목 현상이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구간이었습니다. 디자이너가 전달한 시안과 실제 개발 결과물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었죠. 피그마는 2023년 6월 ‘데브 모드(Dev Mode)‘를 출시하며 이 고질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개발자는 더 이상 디자인을 보고 일일이 CSS 코드를 추측할 필요 없이, 필요한 값과 속성을 피그마 내에서 바로 확인하고 복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이트보트를 사용하듯 자연스럽게 협업할 수 있는 FigJam © figma
화이트보트를 사용하듯 자연스럽게 협업할 수 있는 FigJam © figma

기획자와 마케터를 위한 문턱도 낮췄습니다. 2021년 4월 출시된 온라인 화이트보드 툴 ‘피그잼(FigJam)‘은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에 앞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사용자 여정을 그리며, 브레인스토밍하는 모든 과정을 피그마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복잡한 디자인 툴에 익숙하지 않은 비디자이너들도 피그잼을 통해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피그마는 각 직군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면서도, 그들 모두를 ‘하나의 파일’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했습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피그마 사용자의 약 30%가 개발자이며, 비디자이너가 전체 사용자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피그마가 단순히 디자인을 그리고 전달하는 툴을 넘어, 아이디어 발상부터 최종 개발까지 제품 개발의 전 주기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팀의 운영체제’로 진화했음을 보여줍니다.

🦄 디자인계 유니콘을 넘어 IPO를 향해

피그마의 사례처럼 최고의 제품은 단순히 뛰어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흐름’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탄생합니다. 피그마는 기술을 통해 장벽을 허물고, 커뮤니티를 통해 가치를 증폭시키며, 협업의 본질을 재정의함으로써 스스로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2023년 말, 규제 당국의 반대로 어도비와의 200억 달러 규모 인수합병이 무산된 것은 피그마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도비로부터 받게 된 10억 달러의 계약 해지 수수료는 미래를 위한 든든한 실탄이 되었고, 피그마는 독립적인 길을 계속 걸어갈 동력을 얻었는데요. 최근 기업공개(IPO) 절차에 착수하며 독자적인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AI 기술을 접목해 디자인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거나, 프로젝트 관리 기능을 통합해 더욱 완전한 형태의 팀 운영체제로 나아갈 포부도 밝혔는데요. 피그마가 앞으로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일하는 문화를 바꾸어 나갈지, 그들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