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베이글 뮤지엄: 2000억 원의 베이글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Jul 15, 2025

· 4min read

역사의 시작,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엘엠비
역사의 시작,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엘엠비

2021년 9월, 서울 안국역 인근에 문을 연 작은 베이글 가게가 불과 4년도 채 되지 않아 F&B 업계의 지형을 뒤흔드는 빅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바로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이야기입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가 약 2000억 원에 인수를 확정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는데요. 단순히 ‘줄 서서 먹는 빵집’의 성공 신화를 넘어, 이번 M&A는 현재 F&B 시장의 가치 평가 기준과 투자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과연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성공은 반짝 유행에 그칠까요, 아니면 새로운 F&B 제국의 서막을 여는 신호탄이 될까요? 이번 인수의 배경과 유사한 사례들을 비교해보면 미래를 어렴풋이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 2000억 가치의 비밀, 베이글 너머의 경험

런던베이글뮤지업 매출 및 영업이익 추이

2023년 ~ 2024년 기준 (단위: 억원)

출처: 엘비엠 감사보고서

런던베이글뮤지엄의 기업 가치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재무제표의 숫자를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매출 796억 원, 영업이익 243억 원이라는 경이로운 실적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의 강점 중 일부일 뿐인데요. 30%에 달하는 높은 영업이익률과 외부 투자 없이 쌓아 올린 탄탄한 재무 건전성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JKL파트너스가 베팅한 것은 단순한 ‘수익성 좋은 빵집’이 아닙니다.

©엘비엠
©엘비엠

그들이 본질적으로 구매한 것은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 경험’입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맛있는 베이글을 파는 곳을 넘어, 마치 런던의 어느 골목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데요. 빈티지한 인테리어, 영어 메뉴판, 세심하게 디자인된 포장까지,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강력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다른 베이커리 가게에선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결국 2000억 원이라는 가치는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두터운 팬덤, 그리고 아직 국내 6개 매장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비롯된 높은 성장 잠재력에 대한 평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화된 F&B 시장에서 이처럼 독보적인 ‘희소성’을 가진 브랜드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 사모펀드의 공식과 창업자의 감성, 성공적인 동행이 될까?

사모펀드와 창업자의 만남은 종종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재무적 성과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모펀드의 목표와 브랜드의 정체성, 즉 ‘영혼’을 지키려는 창업자의 비전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JKL파트너스는 창업자 이효정 CBO(최고브랜드책임자)를 비롯한 기존 경영진과의 동행을 선택하며 이러한 우려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과거 F&B M&A 시장에는 이러한 협력이 빚어낸 성공과 실패의 교훈이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공차는 사모펀드 UCK파트너스와의 만남을 통해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UCK파트너스는 2014년 공차코리아를 인수한 뒤, 한국 시장에 맞는 메뉴를 40여 종 개발하는 등 현지화에 집중하면서도, 2017년에는 대만 본사를 역으로 인수해 글로벌 본사로 거듭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확장과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 도입을 통해 기업 가치를 5년 만에 약 6배로 끌어올리며 성공적으로 매각할 수 있었습니다.

북유럽 감성을 위시한 '레드머그커피' ©놀부
북유럽 감성을 위시한 '레드머그커피' ©놀부

반면,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에 치중하다 브랜드의 근간이 흔들린 사례도 있습니다. 국내 최대 한식 프랜차이즈였던 놀부는 2011년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PE에 인수된 후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모건스탠리PE는 놀부의 핵심 역량인 한식과 무관한 커피, 분식 등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다각화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인수금융 부담은 고스란히 놀부의 재무 구조를 악화시켰습니다. 결국 브랜드 정체성을 잃고 실적이 악화된 놀부는 11년 만에 헐값에 재매각되는 결과를 맞았습니다.

‘가성비’의 대명사였던 맘스터치 역시 사모펀드 인수 후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2019년 케이엘앤파트너스에 인수된 후, 본사의 이익을 우선하는 과정에서 가맹점주들과의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원부자재 가격 인상, 프로모션 갈등 등 본사와 가맹점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혜자버거’라는 긍정적 이미지는 ‘계모터치’라는 오명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내부 갈등은 결국 브랜드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매각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미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JKL파트너스가 공차의 사례처럼 창업자의 비전을 존중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 가치를 키워나갈 것인지, 아니면 놀부나 맘스터치의 경우처럼 단기적 효율성에 매몰되어 브랜드의 핵심을 잃게 될 것인지, JK파트너스의 선택에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 유행과 클래식의 갈림길에서

프랜차이즈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프랜차이즈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성공에는 그림자가 따르듯,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미래에도 몇 가지 우려 요소가 존재합니다. 가장 큰 위험은 ‘유행 의존성’입니다. 탕후루, 대만 카스테라처럼 수많은 F&B 아이템이 짧은 유행 주기를 넘지 못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베이글이라는 단일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유행이 영원하리란 법은 없죠.

또한, 제한적인 매장 수는 브랜드의 희소성을 유지하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기도 합니다. 성급한 확장은 자칫 품질 관리 실패브랜드 이미지 희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결국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짝 유행’을 넘어 ‘오래 사랑받는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매장을 늘리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JKL파트너스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해외 진출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일본과 싱가포르 진출을 준비해 온 만큼,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잠재력은 충분합니다.

📈 새로운 성공 방정식이 될 수 있을까?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매각은 단순한 M&A를 넘어, 창의적인 브랜드와 스마트한 자본이 만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뛰어난 재무 성과와 강력한 브랜드 파워, 그리고 창업자의 비전을 존중하는 파트너십은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는데요.

다만, 유행의 변화와 경쟁 심화라는 무시 못할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JKL파트너스와 런던베이글뮤지엄이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브랜드의 본질을 지키며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한다면, 이번 인수는 국내 F&B 산업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성공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안국역에서 시작된 베이글의 여정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K-브랜드의 신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